이념문제로 홍범도 흉상에 대해서 아주 시끌시끌합니다.
홍범도는 독립운동가냐 아니다 빨갱이다 이걸로 싸우고 있는데요.
그래서 홍범도는 파묘해서 북한으로 보내야 한다는 말까지 보수에서 나오고 있죠.
홍범도 장군 (1868년~1943년)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운동을 하다가 중국에서 또는 러시아 연근에서 목숨을 잃은 독립군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홍범도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죠. 2019년 4월 카자흐스탄 국빈 방문 당시 홍범도 장군의 유해 봉환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2021년 8월15일 카자흐스탄에서 봉환된 홍범도 유해는 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제3묘역에 안장됩니다. 홍범도 장군이 별세한 지 78년이 지나서야 말이죠.
홍범도는 1910년 한일 강제병합 전후 국경을 넘어 만주와 연해주 일대에서 독립군 양성을 합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북간도에서 대한독립군을 창설해 함경도 혜산진의 일본군 수비대를 습격하는 등 국내 진공작전을 펼칩니다. 1920년에는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냅니다.
공산주의 독립운동가
그에게 따라 붙는 수식어입니다.
레닌은 1917년 11월에 볼셰비키 혁명을 일으킨 후 공산주의 국가를 기치로 내걸게 됩니다. 일본은 1876년 에도막부를 무너뜨리고 중앙 집권 통일 국가를 이루죠. 이후 자본주의 형성의 기점이 된 변혁의 과정과 자유주의를 받아들입니다. 중국은 송나라 이후 성리학을 받아들였고 조선도 성리학에 기반을 둔 나라였습니다.
일본은 서구 선진문화를 받아들입니다. 조선은 중국을 섬겼죠. 일본은 청나라를 상대로 1894년 청일전쟁을 벌였고 1937년 7월 일본은 중일전쟁을을 일으킵니다. 당시 독립운동가들이 중국 대륙으로 가서 일본군과 싸우는 것은 대한독립도 있었지만 실은 중국과 러시아를 일본 침략으로부터 막아주기 위한 종속주의 차원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이거 때문에 공산주의 독립운동가란 말이 나오는 것인데요. 홍범도의 독립운동 무대와 활약이 중국과 러시아와 관계를 짐작할 때 홍범도도 그렇게 했을 거란 추론입니다. 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홍범도의 평가는 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과연 독립운동을 위한 행동이었냐 아니냐로 말이죠.
홍범도와 레닌의 관계
레닌은 홍범도와 접견 후 그에게 금화와 권총을 주었습니다. 왜 주었을까요?
봉오동 전투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홍범도는 1921년 만주에서 다시 연해주로 옮겨가 소련군의 일원이 됩니다. 1922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극동인민대표자회의에서 김규식 여운형 조봉암 등 50여 명의 독립운동가와 함께 레닌을 접견합니다. 레닌이 트로츠키를 통해 홍범도를 따로 불러 단독 면담을 한 다음 금화와 홍범도 이름이 새겨진 은제 마우저 c96을 선물해줍니다.
그후 1923년 연해주 남부에서 한인 콜호즈를 비롯한 지역 사회의 지도자가 됩니다. 1927년 소련 공산당에 정식으로 입당하게 되고 1937년 이오시프 스탈린에 의해 소련 영토였던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1941년 6월 독소전쟁이 발발한 이후에는 물자를 아껴 전선의 병사들을 돕자는 선전활동을 하기도 하고 레닌기치를 읽고 여기에 직접 글을 투고하는 등 젊은이들에게 참전을 독려하기도 했죠.
##마무리##
홍범도에 대한 평가는 엇갈립니다. 이러니 지금 이념문제로 홍범도가 시끌시끌한 것이겠죠.
그러나 홍범도 파묘해서 북으로 보내야 한다는 말에는 명확하게 답을 할 수 있습니다.
홍범도가 가입했다던 공산당은 북한이 아니라 소련에서 독립운동하기 위해 가입했던 소련 공산당이었습니다. 이를 어떻게 볼지는 평가가 엇갈린다고 말씀드렸고 홍범도는 해방되기 전 1943년에 돌아가셨습니다. 즉, 북한이란 나라가 생기기도 전에 이 세상을 떠난 사람입니다. 북한 공산당이라고 북한에 보내야 한다는 소리는 완전 개소리입니다.
그리고 홍범도에 대한 저의 생각을 전하자면 홍범도가 소련 공산당이라것이 문제면, 그런 소련 공산당이랑 군사동맹 맺고 함께 전쟁을 치룬 진성 빨갱이 국가가 미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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